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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 - 간암을 이겨내고 새삶을 얻다.

by 신나는 삶 2017. 7. 15.

0 0 친구에게


사모님의 병환에

고심하고 고생하고 힘들었을 일을 생각하니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네.


내가 오래전 겪은 일이 지금 사모님이고

친구가 겪고 겪어야할 일들이 내 부인이 10여년전 겪은 일이기에

참고가 될까

이 글을 쓰고자 하네


내게, 내 부인에게 있었던 일들을 먼저 반추하고

1. 아들(공여자)에게 쓴 편지 -아래 첨부

2. 신문 기사, 간이식 수기, 왕희정 박사님께, 아내에게 쓴 편지 - 글 말미에 첨부하네



간이식을 하기까지에는

친구 역할이 무척 중요할 걸세

내 아내가 나를 살린 것처럼......


내 아내

간이식에 대한 상식을 (인터넷도 모르면서) 인터넷을 찾아 알아내고

병원(아주대학병원)을 알아보고

의사(왕희정 박사)와 병원관계자들을 상담하고

(나도 모르게) 가족끼리 협의를 하여 간 공여자(작은 아들)를 결정하고

(간 공여는 아마도 아내가 하려 작심하였으나 협의 끝에 결정하였다함)

이식 수술 날짜를 결정하는 등

내 의견과 무관하게 아내는 백방으로 알아보고 추진하였다네


최종 관문은

환자인 나를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제일 어렵더란다.


내 상태

200311월 간암 판정을 받고

20041월 간의 절반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으나

그 후 자꾸만 자라는 암은

나와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자꾸 생겨나 커가는 암을

색전술(가랑이 동맥을 뚫어 간암까지 가느다란 기구가 찾아가 암에 약을 팍 쏴 암이 더 못자라게 하는 시술)

시술하고 또 시술하여 6번을 하였으나 자꾸만 암이 생기고 자라

내 생명은 6개월 정도의 시한부에 이르름


몸과 마음은 이미 피폐해져

이미 죽음은 목전에 있어 삶의 의욕은 없어지고 각오도 되어있는데

간이식 수술로 굳이 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고

내가 뭘 얼마나 살겠나 싶었다네

그때가

교장 강습을 받고 있는 중이었지

내 형제나 지인들은

살지도 못 할 걸 교장 강습은 다 무어냐고 사표내라고들 하였지만

남편을 살리겠다는 아내의 의지는 남달랐기에 강습을 강력 권하였고

그때 당시의 교장선생님도 어차피 학교에 근무하느라 힘들거면 강습 받으라고......


내 아내가 나를 살리기 위한 어마어마한 일들은 아마도 장편 소설일 걸세


여하튼 수술은 성공적으로 받아 새생명을 얻었다네

그 당시 아들들은 대학생이었고

이제 살아났으니 그 아들들을 가르쳐야한다는 책임감으로

나 또한 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생각됨

(수술 후 1달만에 지팽이를 짚고 3개의 계단을 오르는데 5분은 걸리도록 달달 떨면서 억지로 출근하는 억척도, 밤에도 100m도 걷기 힘들어 낑낑거리면서도 공원에 나가 걷기 운동을 하는 등)

하여튼


다 죽어가던 나는 암에서 해방하였고

교장을 8년이나 하였고


골프를 배워  300m 드라이브를 날리는 장타를 치기도 하고

싱글 플레이어가 되어

자네 전화를 받던 어제도 문경골프장에서 친구들과 여럿이 12일 골프를 즐길만큼

나는 건강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네


그 후 아들은 빠르게 회복되어

보름 만에 퇴원하여 다니던 학교 열심히 다니고 미국 유학까지 거뜬히 다녀와 취직하였다가 지금은 금융계통 사업을 하고있으며

배에 커다란 흉터도 자랑삼아 목욕탕에나 수영장에도 떳떳하게 다니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었다네

아버지를 살려낸 훌륭한 효자 아니겠나?

가끔 아들에게 물어본다.

"수술실 앞에까지 와서 무섭지 않더냐?"

"그 무서운 걸 어떻게 참아냈더냐? 도망가고 싶지 않더냐?"

아들은 배를 갈라 간을 빼 간다는 무서운 공포를 이겨내고

아버지를 살렸다.

나에게 도로 내놓으라면~~~

'아, 무서워!'

목욕탕에 같이 가서 아들 배의 그 흉터를 볼 때면 만감이 들어 아직도 울컥하네만.....


내가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와 블러그에 내 닉네임은 신나는 삶이라 명명하였고

하루 하루가 덤으로 얻은 신나는 삶을 살고 있다네

또한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을 생일로 하여

원래 5월 생일을 간이식 수술날짜인 84일로 옮겨

며칠 후 12번째 생일이 돌아온다네.


아래 글은

수술하기 한 달여전(20057)
아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한 메일이라네


아내와 내 아들은 수술날짜를 두어달전 결정해 놓았으나

아들의 목숨이 걸린 일을 그때까지도 차마 허락치 못하다가

미안함과 용기내기 어려운 마음을 간신히 전하려한 메일이라네


교장 강습 중에 보디가드/보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지상이를

옆에 앉혀놓고 울다울다 5시간을 쓴 내용이라네


이 글이 참고와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결단의 단초가 되어

사모님이 쾌차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네



<아들에게 쓴 편지>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남이 흉내내지 못할

아들에게

글을 쓰려하니

막막함과 미안함, 죄스러움과 안타까움······.


어찌 아비로써

아들에게 이런 일이,

한마디도 네 면전에서 할 수 없었던 마음을 적으려하니

자판의 글씨가 보이지를 않는구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로

껌껌한 극장에서 흐느낌으로나 있어야할

기가 막힌 줄거리가

우리들에게 일어나고 있음이 실감나지 않지만

며칠 후 실제로 있어야할 사실임이 확실하니

어찌한다냐?


내 몸을 빌어 네가 태어났으나

이제

네 몸을 빌어 나를 태어나게 하려하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스스로 허락되질 않으면서

네게 한마디 못하고

날짜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모른 척 이끌려가고 있는 이중적 마음에

아비로써 떳떳하지 못하구나


아들에게 지워야할 짐이 너무 잔인하기에

지금 홀로

힘껏 울어 변명하고자 한다.


차라리 너와 나의 역이 바뀌었더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는 않았겠다만

미안하고 미안하구나


너 어릴 적

풍족히 해주지 못했고

네 바라던 커다란 꿈

꾸어보지도 못하게 했는데

이제 네 발목까지 잡는 아비가 되고보니

후회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비의 진한 눈물 몇 방울로 될 일은 아니로구나

그래도 꿋꿋이 참아내고 버텨가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알바를 해서 힘이 세어졌다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내 아들이 이제 어디에 내 놓아도 되겠다 싶었고

다 컸구나 했더랬다.


아빠는

처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스스로의 자기목표로

내 인생은 이제 완성 단계에 다다라

세상은 내편인 것처럼

남들의 도움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예상하지 못한

암과의 싸움은

사람을 무척이나 지치게 만드는구나


하루에 스무번도 더 하늘을 넘나들면서

이제

아들 팔아 내 삶을 얻으면

내가 아버지이더냐? 네가 아버지이더냐?


아직

새 삶 후에 내가 살아야할

설계를 한 줄도 하지 못하고

며칠 후에 네게 해야할 말도 준비하지 못한 채

바보인 양 만나야겠구나


네 앞에선

의젓한 아버지로 서려

무진 애를 써보마

엄마의 지극정성과 사랑을 고마워하고

아들들이 자랑스러워

세상을 모두 쥐어주려 하였더랬는데······.


아들아 내 아들아!




<붙임>


1. 간이식 수기-이성연.hwp


2. 수술후 왕박사님께 보낸 편지.hwp


3. 아버지에 간이식한 이수영학생-신문기사.hwp


4. 수술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hwp






아버지에 간이식한 이수영학생-신문기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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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 수기-이성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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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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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후 왕박사님께 보낸 편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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