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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목행초 - 정년 퇴임 - 황조근정훈장 - 마지막 출근을 하다

by 신나는 삶 2014. 8. 29.

 

                 마지막 출근을 하다.

 

1972년 10월 1일 복성초등학교를 시작으로

41년 8개월

오늘 그 마지막 출근을 하여

"얘들아, 나는 너희들을 참 사랑했는데 이제 집으로 간단다."

"잘 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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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행교육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50여명의 교직원과 악수하고

600여명이 잘 가시라고 손흔드는 가운데를 흐르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지나와

교문 앞에 도열하여 고사리 손 내미는 유치원생들에게

잘 있으라 하고

 

이상 얄궂한 기분으로 긴긴 진입로 나무 사이로 학교를 벗어났다.

 

 

 

30분도 안 되는 아침 시간

어느 조그만 아이 편지들고 들어오고

우루루 교장실에 모인 수십명의 아이들 일일이 악수나누는 사이

유치원 때부터 유난히 날 따르던 아이 하나, 멀리서 울먹이며 서있기만 한다.

부끄러 간신히 내민 손 잡아주니 뒤돌아 간다.

일부러 작별하러 찾아온 운영위원장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지말라고 매달리는 아이도 있고

빨리 조회대 아이들 기다린다고 날 데리러 온 선생님 눈물 흘리고

교문까지 나와 눈물 범벅된 이도 있으니

평생 직장 마지막 나가는 학교문에서

그래도 서운함만 있는 것도 아니렸다.

 

 

 

나를 그리도 좋아하던 영은이 눈물 잔뜩 머금고

층계에서 기다린 듯 조우하여, 잘 있어라 인사하였으니

못내 아쉬울뻔 했는데 그래도 다행이다.

 

맑고 깊은 순수한 너의 눈, 그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었단다.

마음껏 놀아주지 못하여

못내 아쉽구나.

나는 아이를 진정 좋아하는 선생님일 뿐이란다.

그 깨끗한 영혼에 걸맞게 잘 크시게. 네가 있어 참 행복한 날들이었단다.

 

 

세번씩이나 근무했던

목행초와의 질긴 인연이었지만

무사무탈하게 살아서 돌아가는 그 길이

영광이고 자랑이다.

 

목행초 4년 교장 재임 중
국회의원,교육감 등
강당 신축을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예산을 확보해
내년엔
교문 옆에 저기 농구장엔 다목적 강당이 들어설테고

무수히 많은 저 나무들은 내가 심고 가꾸어 저만큼 자랐고

짙은 녹색의 천연잔디

사육장 토끼, 닭들

두루두루 내 손길 간 교정

초롱초롱 저 빛나는 아이의 눈망울들

모두 두고 떠나기 참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그러나

나 나이들어 그만 집에 가라고

황조근정훈장 목에 걸어주니

터벅터벅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와 반기는 아내

"부인, 무사무탈하게 42년 교직생활 그 임무 마치고, 살아돌아 왔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나를 이렇게 살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큰절로 보답하여 복귀 신고하고자 합니다.

한사코 사양하여 절 올리지 못하였으나

백화점에서 제일 비싼 옷 사주겠노라는 35년전 약속 지키고자 합니다.

 

30년 병구완하느라 맘고생, 몸고생

정말로 수고하셨소.

여기 황조근정훈장 당신 목에 걸어드리오리다.

"여보,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교직 42년 8개월

나는 아이들 사랑에 무척 신이 났고

학교가 좋았으니

내 교직생활, 내 인생

 

"나는 할만큼 했노라!"

 

 

자칭 큰아들이라는 조재성

자칭 며느리 소영, 손녀딸 조안, 손자 조이안

케익 사들고 축하하러 왔다.

 

제 배를 갈라 간을 내어주어
나를 살린 작은 아들 가슴에

자랑스런 훈장을 달아 주었다.

이 훈장은 자네가 타야 하느니......

자네가 있어 오늘 이 훈장을 네 목에 걸 수 있었노라고

잠시 목이 메여 옴에 고개를 돌렸다.

 

 

 

 

<제자들 만나다.>

 

30일 저녁엔

제자들(목행초 34회)

당진에서 부산에서 서울에서 까지 달려와

30년전 이야기로 왁자지껄

어쩌면 그 당시 나보다 내 아내에게 더 정이 들었나보다.

그넘들 내 집에 매일 몰려와 들쌀을 놓아도 받아주고, 먹을 거 해주던.

 

 

 

이것들이 꽃바구니에도 사모님~

그래도 영중이는 나 때문에 선생님 되었다고 처자식에게도 내 얘기 해다며

서울에서 부산 갔다가 부랴부랴 달려 왔단다.

재성이는 지금의 자기가 되었다니 감사할 밖에......

자칭 큰 아들 요즘 베트남에 병원 25개 짓는 사장 되었다니 축하할 일.

매일 업어달라 보채던 순근(사진에 얼굴이 가렸네)이는 몇 년전에 나타나

아버지 정을 느껴노라고 톡톡히 제자하겠다고, 자신만만한 여장부가 되었다.

순근이 일수와 짝 해달라고 맨날 떼쓰더니

일수야, 너는 나보러 온겨냐 순근이 보러 온거냐? 출판사 근무한다고 얼굴에 글쟁이 표가 난다.

 

명희는 나랑 인연이 만나 몇년째 같이 근무하며 예쁜 짓 다 하더니

직원들과의 퇴임식에서 감동깊은 사은사를 낭독해 눈물바다 만드네.        20140827-사은사-권명희.hwp

 

정구는 몇 년전에 제천까지 여럿이 놀러왔을 때 개울에서 고기 잡다가 바지를 버려

 

사모님 바지 입고 갔더니 왜 그냥 왔더냐?

그 멀리 당진에서 왔다고? 이제 장가 간다고 주례 해 달란다.

주경민이는 주은지, 은비 아버지란다. 그 엄마하고는 몇 년전부터 학교에 열심히 쫒아와 오랜 지인이다만

이제사 내 제자라고, 용기가 없어 못 찾아뵈었노라 극구 미안해 한다. (노래방에선 노래 잘 하더라 )

 

금주는 자기는 3반이었다고

가까이 오지 않으려는 척 하지만 지가 제일 제자 노릇했으면서

내 무척 힘들 때, 바쁜 와중에도 기쁨조하느라 얼마나 애 썼는데.......

성미가 나타나니 반색을 한다. 성미는 9월말 제주도 한달살기 할 제

애월읍에 있는 제 집에서 묵으라고........

 

모두들 30여년 동안 정을 나누며 지내온 제자들과

퇴임을 즈음하여

회포를 풀었다.

얘들아, 고맙다.

내 아내와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이 있는 자네들이

사모님까지 잘 챙겼으니 더욱 고맙구나.

 

이제 나는 화백이 되었으니 자네들 주소록 내게 주시게

예전 '와룡선생' 처럼 팔도의 자네들 집집마다 찾아가

선생님 노릇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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