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정이품송 - 보은 속리

by 신나는 삶 2013. 4. 6.

정이품송 - 보은 속리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정이품송은

그래도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한 쪽 가지가 잘려 없어졌지만

그 위용은 그대로이고

 

 

방향을 바꾸어 바라보니

그 모습이 그대로이다.

 

보은

내게는

오래전, 30년도 더 전에

추억이 깃든 곳

그곳에서 하루 저녁 유하면서

오랜 옛 기억에 잠시 젖었다.

 

 

<참고> - 문화재 설명

 

요약설명

보은 속리 정이품송은

키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고, 나이는 600년으로 추정하는데,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정이품송은

조선 세조가 법주사에 갈 때 가마가 나뭇가지가 걸리자

가지를 들어 행차를 도왔다 하여

정이품 벼슬을 받은 나무로 유명하다.

삿갓 모양의 아름다운 소나무였으나

1993년 강한 바람에 서쪽 가지가 부러져 모습이 상했다.

“왕의 행차를 도와 벼슬을 한 소나무”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조선의 세조는

하늘이 노한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집권 내내 종양과 피부병으로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전국의 이름난 약수와 온천을 찾아 헤매던 세조는

어느 날 약수로 유명한 법주사 복천암을 찾아 가고 있었다.

세조는 행렬이 한 소나무 아래를 지날 때 가마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유를 물으니

나뭇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세조는 고개를 내밀고

“무엄하구나! 연(輦) 걸린다!”

하고 꾸짖으니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기특히 여긴 세조는 소나무에게

친히 옥관자를 걸어주고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송’ 혹은 ‘연걸이소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정이품송 아래에서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와

노인이 이 나무를 안고 돌면

죽을 때 편히 세상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상세설명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리하여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이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그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이어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에게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