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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두리

그녀의 하루

by 신나는 삶 2007. 9. 15.
 

그녀의 하루


새벽 6시

예쁜 옷을 차려 입었다.

정말 예쁘다.


보라색에다가 품위가 있고 우아한 옷이다.

하마 몇 년째

한코 한코 염불하듯 마음을 다스리면서

코바늘로 짠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수준 높은 옷 중에 하나다.

아마 사려면 100만원도 더 갈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병원과 집에서의 보호자 생활

폐쇄되고 자유가 없는

창문없는 감옥은

그녀로 하여금

끊임없는 작품을 완성해 나가게 했나보다.


그 예쁜 옷은

고급 파티에서 레드와인을 손가락 사이에 들고

살랑살랑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핸썸한 킹카들 사이로 우아하게

폼잡아야 할

그런 드레스보다도 더 예쁘다.


그러나

그걸 입고 오늘

병원행이다.


오전 8시에 도착

사람들 사이로 다니면서

접수, 수술실, 외과, 혈관조영실, 주사실

그런 단어들이 무성한 실내에서

종일

작고 딱딱한 의자에서

‘아프다’란 말 밖에 모르는 잔뜩 찌푸린

그놈만을 보았다.

오늘따라 더 아프다고 엄살이다.


옷이 아깝다.


그놈이

수술대 위에 있을 때도

침대위에서 잠이 들어 있을 때면

그녀의 손엔 예의 그 실과 바늘이 들려 있어

열심히 벌집을 짓듯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할렐루야’였을까?


그놈의 검사결과가

암이라고 할까봐

초조하게 기다리는 마음에 그녀는

손이 더 빨라지고 있다.


내색은 않지만

견디기 힘든 그녀의 지루한 시간들은

오후 5시 반에 끝났다.

오늘따라 비는 왜그리 지랄같이 오는겨?

두시간을

그놈을 모시고 운전을 해야하는디.


도착한 늦은 시간

그놈을 저녁을 멕여야 한다.

그만 가만히 자빠져 자지

저녁 내내 아프다한다.

그녀는

다리며 팔을 주물러 주었다.


저녁 10시는 되어서야

오늘 하루가 다 지났다.


인상한번 안 쓰는

그녀는

그놈에게 왜 그렇게 잘 하는 걸까?

아마 정말로

전생에 그놈에게 빚을 지긴 무지하게 졌나보다


그녀는

그 여러 벌의 직접 실과 바늘로 짠

스무벌도 넘는 예쁜 옷의

수천번도 넘는 올의 숫자만큼

도통을 했나보다.

스스로는 우울증을 앓을 틈조차 없이

도통을 했나보다.

도통을 했나보다.

도통을 했나보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 그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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