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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회산군파 충주종회

전주이씨 회산군파 충주종회 - 光夏,德濟 후손 가계도

by 신나는 삶 2014. 7. 19.

나는 누구인가? 

   

조선왕조의 후손

태조(이성계) - 태종(이방원) - 세종 -  세조 - 성종 - 회산군
 참고(조선 왕 가계도)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9%95_%EA%B0%80%EA%B3%84%EB%8F%84

  

 

 

퍼온 곳: NAVER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2724&cid=40942&categoryId=33383 )

 

회산군[ 檜山君 ] (1481~1512)

     조선 시대의 왕손으로 성종(成宗)의 다섯 째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이염(李恬),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어머니는 숙의 홍씨(淑儀洪氏)이다. 
중종 때 대신 김안로(金安老)가 임금에게 간언하는 것을 면전에서 꾸짖어 물리쳤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중종의 명에 의해 
아우인 견성군(甄城君)의 둘째 아들 계산군(桂山君) 이수계(李壽誡)를 양자로 들였다.
묘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견성군(甄城君)

조선 성종의 아들. 이름 돈(惇). 숙의(淑儀) 홍씨 소생이다. 1491년(성종 22) 견성군에 봉해졌다. 1507년(중종 2) 모반을 꾀한 이과(李顆)의 추대를 받았다 하여 간성(杆城)에 유배, 사사(賜死)되었다. 이듬해 역모에 가담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신원(伸寃)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회산군 [檜山君] (두산백과)

 

회산군 가계도

    檜山君       성종대왕 5째아들
    桂山君       회산군 아우인 견성군(甄城君)의 둘째 아들
  豊城君 義城君 丹城君 昌城副守    
  西原君 西平守 西昌守      
    挺立 1 茂立 2 秀立 3 耀立  
光殷 光周 光夏
전의이씨
  光朝   (충북 충주시 앙성면 사미리) 상암산,
경기도 남양주에서 이장 합장
    基禎
평산신씨
  觀禎   사미리 부창산 묘좌
합장
    仁恒
창영조씨
여흥민씨
  관정의 3仁恒   사미리 상암산 자좌
쌍분
 西昌守 - 秀立 - 光朝 - 觀禎 -
    德濟
수원백씨
문화류씨
목천상씨
      사미리 부창산 해좌
사미리 뒤
사미리 상암산 자좌
구복산

<이 표는 오래전 종중원들에게 배포한 표를 본인이 약간 수정한 것으로 산소의 표기는 이순우가 작성한 (옛날 보따리에 있는) 것을 참고 하였을 것임에 우리 종중의 모든 정보(종중 땅 문서, 1/12,000지도, 묘지표기, 족보, 돈, 이순우 땅 문서 등)가 있는 그 보따리에는 상기 표에 기재된 묘지 장소 표기(이순우가 작성)가 있었기에
20 수년전
상기 회산군가계도를 종중원들에게 배포한 이(이영우)가 그 모든 증빙자료가 있는 보따리를 가지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음>


- 그 정보를 이용하여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187-2외 여러 필지의 토지도 서울 반포동 399-2 신반포6차아파트의 ***-***호 주소로 등기를 이전(198?년5월25일)하여 매매하였을 것임
- 양주, 동두천 등의 토지 지번을 찾은 것은 이순우가 관리하던 그 보따리를 참고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임에
- 당숙님!(5촌에서 양자를 가서 15촌이 되심), 돌아가시 전에 그 보따리 돌려 주시지요. 
  - 동두천 상패동 토지보상건도 그 보따리에 있는 구등기가 있어야 해결이 될것임에.....
    (불행이도 등기에 이순우 주소가 사미리 130인데 13으로 되어 있기에.....)

 

德濟 후손 가계도

            참고 : 전주이씨회산군파 인터넷족보  http://www.hoisangun.com/

          <설명> - 이성연(이순우의 2자)의 편집 및 설명
                     0. 영재 - 3자 영재보다 장손이 2명(석재,회재)이 있었으나 절손되어
                                 - 영재 직계후손(철훈,순우,대연,진영)이 사실상의 종손이라 판단됨

        1. 석제 - 행섭의 1자로 행엽의 자로 계  - 장손을 종손에 양자한 것은 잘 했으나 아쉽게 절손
        2. 병국 - 의성군의 1자 서원군(서평수의 형)의 9세손 - 너무 먼 친척을 양자로 했지만 아쉽게 절손
        3. 대규 - 상지의 1자로 상한의 자로 계 - 사실상의 종손인 태규를 상한의 자로 계 했어야
        4. 광훈 - 태규의 3자로 점규의 자로 계

        5. 남훈 - 태규의 5자로 진규의 자로 계
        6. 학구 - 철훈의 2자로 계훈의 자로 계
        7. 순구 - 철훈의 3자로 광훈의 자로 계                                                  

 

<이성연의 생각> - 회산군파 충주종회(德濟 후손) 종손에 대하여


1. 회산군파 충주종회(德濟 후손)의 족보는 喆薰(丙子-1876년생)할아버지 생전에 정리한 듯하다.

   - 대규(癸亥-1863년생)를 상한의 자로 양자 
      -태규(철훈의 부)를 상한의 자로 양자했어야 우리 집안의 갈등이 없었을 듯

   - 철훈 할아버지는 당시 參奉의 직으로 충주종회에서는 사실상의 종손
        - 1900년대에 앙성을 근거로 하는 일가친척은 모두 큰집이라 칭함

        - 장조카(순우)에게 '님'을 안 붙였다고

          창구할아버지를 꾸중하셨다고(철훈할아버지가)

          용우아저씨가 증언(2018년 시제시 여러 사람에게)하심

   - 철훈의 동생들(광훈, 남훈)과 아들들(학구, 순구)을 양자 보냄
       - 사실상의 종손인 철훈의 동생과 아들들을 더 앞쪽에 배치한 것이 모순이기에
         영우 아저씨가 더 종손이라는 해프닝이 생기게 되었다.

        (이성연의 변)
               - 자기(철훈)가 사실상의 종손인데, 대규를 족보상 종손에 양자보내면서
               - 철훈 왈 " 다음부터는 4촌동생인 하훈(대규의 자-1987년생)이 종손 노릇하라" 했을까?
                   - 추측하건데, 대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족보상 양자했을 것
               - 당시 철훈은 권위가 강하여 친척들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었다함

                     이철훈 기념비 : http://blog.daum.net/9988123/928

 

2. 시제에서의 종손
  - 족보상 종손(대규의 후손)이 잔을 먼저 올리는 것은 예의상 맞다.
  - 족보에 양자를 보내는 것은
     - 행섭의 장자(석제)를 행엽에 양자로 보내어 종손이 되게 하는 것처럼
     - 장자를 양자로 보냈어야하는데 대규를 양자 보내는데에서부터 모순이 된 듯

 

이철훈 영정
이철훈 기념비

        

 

나는 누구인가?

 

조선왕조의 후손

태조(이성계) - 태종(이방원) - 세종 -  세조 - 성종(제9대) - 회산군

 

조선 태조대왕의 23세손

전주이씨 회산군파 18세손이다. (회산군 할아버지부터 18번째)

회산군 할아버지는 나의 17대조이시다.

  - 진짜로는 견성군 할아버지가 17대조이시리라.

  -회산군 할아버지는 후사가 없어 견성군 할아버지의 둘째 계산군을 양자로 두셨다고 한다.

 

              * 참고 : 내려갈때는 아들이 2세(손)이고, 올라갈 때는 아버지가 1대(조)

 

<참고>

         1. 전주이씨회산군파 인터넷족보  http://www.hoisangun.com/

         2. 전주이씨 회산군파 항렬(돌림자) : http://blog.daum.net/9988123/1061

         3. 전주이씨 뿌리 :   http://blog.daum.net/sasdfg56/17159545